1. 불교 세계관
'검은 사제들'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엑소시즘을 철저한 고증과 함께 한국식 구마사제로 로컬라이징하는 데 성공한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를 통해 불교 세계관을 파헤친다. 선과 악으로 구분짓는 기독교식 이분법적 세계와는 달리, 인간도 미륵이 될 수 있고, 욕심과 집착으로 가득한 악인(惡人)도 수련과 득도를 통해 선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모호성을 가진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다. 이러한 모호성을 기반으로 장재현 감독은 선과 악의 연결고리를 절단하지 않고 영화 내내 긴장감으로 승화시킨다.
2. 박목사의 과거
CJ 엔터테인먼트에서 공개한 장작 작가의 '사바하' 프리퀄 웹툰에 따르면, 박목사(이정재)가 설명하는 지인의 과거는 본인의 그것이다. 즉, 아프리카 선교 활동 당시 가족의 참변을 겪은 박목사 자신이 이후 신의 존재에 관한 신뢰와 의심 사이 고뇌하는 인물인 것. ‘신흥 종교 단체’를 파헤쳐 고발한 뒤 이익을 챙기는 박목사는 악마가 된 미륵의 정체를 확인하고 고통받는 인간을 내버려두는 신에게 질문하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3. 영화의 구도
영화에서 박목사(이정재)는 마치 진행자의 역할과 같다. 박목사의 시선에 따라 영화는 진행되고, 박목사가 발견하는 힌트와 새로운 사실로 사건은 풀어진다. 김제석의 정체가 전반적인 ‘게임’의 목적이라면, 관객은 이 게임에서 벗어나 있지만 실제로 참여하는 듯한 긴장감을 즐길 수 있다. 오컬트 장르에 ‘심리 스릴러’를 차용해서 나한, 금화, 황반장, 그리고 김제석이 벌이는 게임의 한복판에 관객을 초대한다. '검은 사제들'에서 김신부(김윤석)이 악령과 싸우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구도라면, '사바하'는 감독이 마련해 놓은 이야기와 설정을 박목사가 발견해 나가는 구도다. 전작이 ‘대결’이라면, 이 영화는 ‘체험’이 되겠다.
4. 배우들의 연기
‘박목사’ 역을 맡은 이정재는 두말할 것 없는 최고의 배우다. 걸걸한 목소리와 호소력 짙은 눈빛으로, 놀라운 현실을 직접 목격해 나간다. ‘나한’역의 박정민 역시, 장재현 감독이 신뢰한 대로, 신비로운 연기를 제대로 소화했다. ‘금화’와 ‘그것’의 1인 2역의 이재인, ‘해안스님’ 역의 진선규 등 주 ·조연들의 연기 앙상블이 빛나며 영화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
한편, '사바하'는 2월 25일 현재 110만명을 돌파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있다. 당초 250만 명으로 알려진 손익분기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의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